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쓰(레)기

그믐밤

by 소쩍새무덤 쓰(레)기 2023. 10. 15.

 

 

어멍은 아방의 바램대로 만선滿船이었어야 할 것을 대신하여 만석萬石을 이름으로 얻었다. 배가 무거워진 어멍은 아방이 바당으로 사라지고도 넋 달을 더 채워 아들을 놓았다. 만석의 목소리가 굵어졌는데도 그의 이름을 배에 실어주는 아즈방은 없었다. 고작 물질하는 작은 배를 지키는 일 정도가 그에게 허락되었다.

마을에는 남자들의 무덤이 없었다. 어린 남자이거나 나이든 여자의 무덤들만 언덕을 넘었다. 서방 잡아먹은 할망은 씨어멍을 언덕으로 넘어 보내고서는 마을이 내려다 보이는 자리에 살았다. 만석의 집 정수리가 고대로 지켜 보여지는 자리였다. 그믐의 밤, 할망은 숨이 차서 만석을 불러냈다. 신짝을 뒤꿈치에 걸지도 못한 그는 아래로 난 골목을 달려 내렸다. 그리고 아즈망 몇을 물이 발목에 닿는 집으로 모았다.

만석은 신발에 든 모래알을 털며 물갓으로 기어나와 턱만 내고 누운 배들을 보았다. 점점 그것들의 윤곽이 명료해져 갔다. 아궁이에 불이 놓이고, 물을 끓여 가위를 뉘었다, 이제 아이만 받으면 되는데. 방 안에서는 저 어둠이 보이지 않을 텐데도 할망은 배들에만 눈이 붙었다.


그믐밤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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